내가 1962년 하버드대에 머물렀을 때였다.
그의 글에는 역사를 지배하는 어떤 섭리가 간직되어 있다는 생각이다조선의 도자기와 채색 백자는 이미 15세기에 유명했고.
이어지는 그의 일침은 뼈아프다.문소영 기자 전시에선 백자의 다채로움이 빛난다.수백 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.
하지만 그는 조선을 비하하지 않았다.이토록 매력적인 백자를 만든 도공들의 이름을 전시장에서 볼 수 없다.
조선백자의 전위성을 일찍이 발견한 사람은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였는데.
김환기의 1950년대 말~60년대 초 그림에 등장하는.그리고 요즘 재조명되고 있는 여성 도공 백파선(본명은 아니며 ‘백 살 할머니 신선이라는 뜻의 존경이 담긴 호칭이다) 등이다.
이제 유교와 결부된 조선백자를 볼 때 그 예술성에 감탄하면서도 그 그림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.조선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백자를 생산할 수 있었으면서도 수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도공을 대우해 이름을 남겨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.
그가 구한말 한양을 방문했을 때 조선과 일본의 문화 격차가 심각했던 모양이다.도기(陶器)는 세계 여러 곳에서 만들었지만.